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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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3-04-23 16:32 조회6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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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뜬 달은 모름지기 휘영청 밝아야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메밀꽃이라도 필 무렵엔, 달 밝고 고요한 밤, 평창 봉평의 어느 물레방앗간에서 장돌뱅이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가 나눈 하룻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 있을 터인데, 느닷없이 낮에 뜬 달은 하늘에 분명 떠 있기는 하나, 허름한 행색의 가난한 나그네가 정처 없이 변방을 떠돌다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듯 초라하고, 허공에 부는 잔바람에도 흔들릴 듯 가련하게 저 홀로 고적하기만 하였다.
생각해 보면, 그 낮달이 그리 보였던 것은, 하필 낮에 뜬 해와 가까이 있어 그 빛의 그늘에 가렸던 때문이고, 세상사에 고달픈 내 신세의 투영일 뿐 멀쩡히 뜬 달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지구가 스스로 돌며 태양의 둘레를 돌고, 달이 스스로 돌며 지구의 둘레를 돌고, 태양이 지구와 달과 화,수,목,금,토의 별들을 거느리고 은하수 물결의 둘레를 억겁으로 도는, 이 지독한 끌림이야말로 형언할 수없이 놀라운 일이다. 서로를 밀쳐내지 않고 당기는 그 끌림으로 인해, 낮과 밤이 날마다 바뀌고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고 뭇 생명들이 암컷과 수컷으로 유별하다. 해와 달과 하늘과 땅의 자식인 나는 어느 오후, 달의 꿈속으로 빠져들어 함께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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