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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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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3-04-23 16:29 조회5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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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언덕에 내린 눈은 시작을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온 듯했다.
그곳은 처녀지處女地. 눈은 재잘대고 속삭이며 오솔길 따라 흩날리고 오르고 내리다 내 앞에 머물렀다. 나는 두근거리고 설레어 어쩔 줄 몰랐다. 쉿, 움직이지 마라. 고요히 너도 여기에 머물러라. 눈은 내게 그리 속삭였다.
느티나무에 까치가 울었다. 깃털처럼 나부끼던 눈의 순한 몸짓. 오솔길 따라 눈이 다시 오를 때, 나는 그저 오래 바라만 보았을 뿐이다. 어느 순간 눈은 부서지고 흩어져 언덕 너머 구릉으로 사라져갔다.
한 점의 눈. 하나의 하늘. 충만한 고요. 언덕 너머 피안으로 나도 따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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