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숲으로 가는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3-04-23 16:27 조회573회 댓글0건

본문

아직 청춘의 더운 피가 식지 않고 얼마간 남아 있던 까닭에, 이미 중년을 바삐 앞질러 가는 나이를 잊고 철없이 울컥하여 더러 화를 자초하던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꽤 먼 거리의 직장을 버스로 통근했다. 집 대문을 나서 시내버스를 타고 영월 읍내까지 가서, 직행버스로 갈아타고 40여 분을 더 가야 하는 제법 먼 통근길이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이 통근은 참 하찮고 무료한 것이었다. 나는 꾀를 하나 내었는데, 퇴근길에 읍내에서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우리 집까지 30리 길을 걸어서 오는 것이었다.
그런 날은 주로 읍내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난 후 달이 휘영청 밝을 때여서,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30리 길이 오히려 가까워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동강 다리 밑 강변 그늘에서 후배와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한 여름철로 접어드는 후덥지근한 날의 저녁 무렵,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며 운치를 더했다. 휘영청 둥근 달이 없을 뿐 걸어서 30리 길의 여정은 그날도 이미 예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문득 생각했다. ‘왜 꼭 그 길로만 가야 하는 걸까’ 그때 문득 저기 먼 산이 내게 다정히 손짓했다. 그 길만 길이더냐 이 산을 넘어가면 그게 길이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내 오늘은 저 산을 직진하여 곧장 집으로 가리라.
그것이 꼭 무모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때 신작로가 나기 전,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동네에서 영월로 가는 지름길은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저 검각산 아래 각한치가 유일하지 않았는가. 각한재로도 불리던 고개의 이름이, 쇠뿔에 땀이 날 정도로 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였으나, 어린 시절 자주 그 고개를 오르내려 본 경험으로 보아 그건 허풍을 크게 보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잊혀가는 역사의 탐방로를 더듬으며 집으로 가는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려는 것뿐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저기 먼 산으로 가는 길은 소풍을 가듯 설레었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지날 때는 날이 어지간히 저물기 시작했다. 목적한 곳에 얼추 다다랐을 때 나는 약간 당황했다. 길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어 시작점을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때맞추어 빗줄기가 굵어지고 금세 날이 저물었다. 다시 돌아갈까...... 이럴 때 가장 좋은 판단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이다. 내가 가려는 길은 천 길 낭떠러지가 아니고 조금 험하고 가파를 뿐이다. 넘어가면 바로 우리 동네 아닌가. 두세 시간 후면 나는 안락한 집에 있게 될 것이 틀림없으리.
처음 얼마간의 오름은 순조로운 듯했으나 나는 곧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양복에 구두를 신었고 어깨끈이 없는 서류 가방을 든 차림새였기에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아 두 발짝 오르고 세 발짝 미끄러지기가 일쑤였다. 무엇보다 그곳은 그저 산이 아니라 산의 숲속이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의 숲의 거친 잡목은 내 몸의 오름을 완강히 가로막았다. 비빌 언덕이 없었고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몇 미터 앞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기에 오로지 육감에 의지해서 더듬거리며 올라야 했다.
사람의 신세가 비참한 처지가 되는 것은 이리 순식간이었다. 비와 땀이 구분되지 않은 채로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조건 올라야 하는 것은 맞는데, 지금 내가 산속 더 깊은 곳으로 오르는 것인지, 우리 집이 있는 방향으로 오르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얼마쯤 올랐을까. 간신히 자리를 잡을 만한 곳에 앉아서 나의 신세를 한탄했다. 골고다 언덕의 고행길도 아닌 채 이게 무슨 꼴인가. 서러움이 명치끝에서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나는 꺽꺽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홀로 우는 것을 보는 이 없고 듣는 이 없으니 부끄러울 일도 없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날의 무모한 일탈은 객기 어린 것이었으나 한편 그 시절 앞날이 막막하고 곤궁했던 내 처지를 위로하기 위해 치르는 자학적이고 고독한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끄러지면서도 그 산의 숲에서 꾸역꾸역 헤매다가, 숲을 벗어나 어느 순간 산의 능선에 다다랐다. 하늘로 시야가 트인 듯했으며 아래쪽으로 비탈진 경사면을 맞이했다.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크게 곁길로 새지 않은 것이다.
비틀거리며 내리막을 타던 내게 혼비백산할 일이 벌어졌다. 저기 저 앞에, 웬 허연 사람이, 소복을 입은 듯한 여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 그 모습은 살펴보면 볼수록 영락없이 그리 보였다.
이런 경우가 실로 진퇴양난이라는 것인가.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는. 그때까지 흘린 땀이 모두 식어버릴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하물며 내 정신은 비정상이었다. 저 귀신을 어찌할 것이냐. 저 아래 골짜기가 먼 옛날에 화장터였다는 풍문이 떠올랐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옆으로 비껴갈 지형도 아니었다. 저 요망한 것은 물리치고 넘어가야 한다. 잔뜩 긴장한 채로 한발씩 다가갔는데 그 소복 입은 것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있었으면 차라리 좋았으리라. 그냥 그 자리에서 저 홀로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거의 그 앞에 다다라서야 나는 문득 그것이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다가가서 손으로 밀쳤다.
아, 이런, 그것은 허수아비였다. 극도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리며 안도했다. 허무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제 살았다는 기쁨이 컷다. 허수아비는 사람의 흔적이고 그것은 사람 사는 동네가 가깝다는 것이다.
나는 집까지 무탈하게 돌아왔다. 몇 시간을 산의 숲에서 헤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집에서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목사님이 무슨 일이 없는지 전화를 하였고, 어머니는 밤늦게 대문을 초조하게 들락거렸고, 아내는 무엇인가 자꾸 서러워 울었다. 나의 늦은 귀가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어느 휴일의 한적한 날, 길을 잃고 헤맸던 근거를 알고 싶어 그 길을 다시 찾았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그 길의 산 중턱에 아주 깊고 큰 웅덩이의 산사태가 나 있었다. 그러니까 밤새워 비 내리던 그날,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올바로 길을 찾아 걷다가 그곳에서 발을 헛디디어 낙상했다면, 나는 어쩌면 죽었을 것이다. 그날의 산은, 그날의 숲은 나를 보호한 것일까.
젊은 날 방황의 시절, 나는 앙드레 지드의 잠언록을 읽고 그가 한 데로 심야의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 본다거나 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 크게 반성하고 그런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
밤의 산과 숲에는 어둠의 정령들이 기지개를 켠다.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될 일이다. 길이 없는 숲속에서는 조심할 일이다. 길을 내고 앞서간 이의 발자취를 따라 조용히 걸을 일이다. 숲은 많은 것을 품어주고 내어주나 모든 것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풀벌레가 울고 달빛이 비치고 산새가 지저귀고 고목의 씨앗이 새로 태어나며 뭇 생명들이 윤회하는 숲은 아름답고 깊고 맑고 거룩한 하느님의 숨이다. 내 마음의 고향이다. 마음이 고달픈 날에 나는 숲으로 간다. 구름에 달 가듯이 천천히 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