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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정체성/ 강미숙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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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2-05-03 02:53 조회9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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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정체성- 백중기 개인전
풍경화는 어려웠다. 그저 보이는대로 그리는 것을 좋은 그림이라 할 수 있는가 스스로 납득할만한 적절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느껴야 할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보이는대로가 중요하다면 극사실주의 작품을 따를 수 없을 테니 결국은 어떤 풍경을 담을 것인가, 그 안에 마음을 어떻게 담는가가 좋은 풍경화가 되는 조건일 것이다.
풍경을 그리는 사람들은 늘 풍경 바깥에 있다. 그 풍경 속에 화가가 들어갈 틈은 없어보인다. 화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어느 풍경 속에 들어가 앉고 싶을까. 백중기의 풍경화는 나무와 꽃, 집과 사람이 늘 등장한다. 심지어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에도 집과 사람이 숨어있다. 어쩌면 그가 풍경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 아닐런지. 어쩌면 작가가 펼쳐내 보여주는 풍경은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의 재현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영월은 참 아름다운 고장이다. 영월,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밤 흐르는 물에 얽혀 조약돌 구르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강가에 앉아 달빛이 빚어내는 물빛과 산빛으로 황홀한 풍경이 보일 것만 같은 곳. 동네 이름도 한반도면, 김삿갓면, 무릉도원면, 술이 샘솟는 주천면 등으로 바꿀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유연함이 돋보이는 고장이다. 주천은 한여름 천렵이며 낚시로도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지. 내가 아는 영월사람들은 영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늘 그게 참 부러웠다. 영월의 아름다운 자연과 단종으로 대표되는 애틋한 정서가 영월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여기는데 작가님도 영월의 산과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 다시 사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원주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풍경은 상지대 정문을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그리고 원주여중에서 언덕을 넘을 때 보이는 치악산 능선이다. 특히 머리에 춘설을 이고 있을 즈음 이곳을 지날 땐 차를 세우고 한참 눈에 넣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겨울 치악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자리다.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 펼쳐지는 소백의 굽이치는 능선, 장성 백양사 연못에 비친 쌍계루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싶게 꿈에 그릴만큼 좋아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강릉 연곡 송림마을에서의 유년기 7년이 빚은 몇몇 장면들이 내가 최고로 치는 풍경들이다. 소금강에서 나려오는 개울물에 어느 여름밤 반딧불이를 손에 그러모아쥐고 엄마와 동네아주머니들과 개울물에 깨벗고 들어가면 엄마가 맨몸으로 품어주던 날것의 매끄러운 느낌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으리. 국민학교 1학년 때 머슴할아범의 등에 업혀 눈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눈나리는 날의 풍경. 지금은 볼수 없는 사무치게 그리운 풍경들.
내가 그런 풍경을 품고 보아서인지 백중기 작가가 펼쳐내보이는 풍경들은 왠지 다 과거의 한때처럼 느껴진다. 하늘아래 첫동네 별이 쏟아지는 마을, 겨울녘 빈들의 충만함이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시골집, 빈가지가 품은 무한한 생명력. 어쩌면 우리가 궁극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그런 오래묵은 원형의 것들이 아닐지. 그런점에서 그의 풍경화는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작품 소개를 멋지게 해주었고 오늘로 연장전시마저 막을 내리니 일일이 작품소개는 안하겠지만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왔던 몇몇 작품은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번째로 좋았던 <그날의 햇살>은 내가 좋아하는 최강욱 의원이 가져갔다니 마치 우리집에 들여놓는 듯 마음이 좋다. 두번째, 영동고속도로 평창 어디메를 지날 때마다 마음에 담아온 장면을 꼭 빼닮은 <숲>은 매력적인 눈매의 페친이신 Ri Mina 씨께서 업어가셨다니 이또한 마치 내것인 양 흡족하고 참 좋다. 전시장에서 좋았던 작품 <저녁눈>은 송림마을 유년시절 우리집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위에 배치한 것이 특히 맘에 들어 계단을 몇번이나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았던 작품은 <기차는 떠나가네>였는데 집에 돌아와 도록을 보니 2017년에 그린 그림을 1.5배 크기를 키워 다시 작업한 작품이었다. 어느 마을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사북 고한 어디쯤에서 본 듯한 풍경, 태백으로 넘어가는 언덕위를 오르며 내려다본 풍경이 내 마음에 오래 각인되어 있는데 캔버스에서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놀라운 것은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총 25점 중 5점을 제외하면 다 올해 작품이라는 거였다. 소품은 많지 않은데 어찌 이 많은 작품을 올해에 작업했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분은 8시간 노동자처럼 작업하시는 건가 놀라웠다. 어떤 소설가는 자신은 집필노동자라며 8시간씩 꼬박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분도 페인팅을 숙명으로 받아안고 사시는 분이구나 싶었다. 성실하고 근면한 예술가, 어쩌면 이것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지는 몰라도 아카데미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배우 윤여정도 자신은 생계형 배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내 맘대로 추측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엄중하고 위대한 것이란 말인가 싶어 백중기 작가에 대한 호감이 더해졌다.
또하나 도록을 어찌나 정성껏 만드셨는지 빈손으로 가서 받아드는 게 민망할 정도였다. 집에 와서 옆지기랑 같이 보다보니 갤러리에는 없는 작품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팽나무>, <겨울나무>, <나무야> 같은 나무 그림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겨울의 나목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 집요하게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오롯이 느껴져 감동이 배가되었다. 갤러리에서는 찬란한 봄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충만한 겨울이 덤으로 따라온 것이다.
봄은 찬연하지만 처연하고 애처롭다. 그의 그림에는 살구꽃, 홍매, 산수유가 피어나지만 화려하다기보단 어딘가 애틋함이 느껴진다. 아마 생을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그래도 나에게는 겨울 나목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이 더욱 강렬하다. 마치 심장에서 모세혈관으로 지난한 길을 내듯, 마치 이웃한 정선에서 내려오는 동강을 품고 한 데 몸을 섞어 서강으로 흘러 장대한 남한강으로 흘러오듯, 곳곳의 실개천과 지류가 만나는 듯한 나목이 그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백중기 작가는 겨울 나무의 당당한 존엄이자 영월 서강이 품은 장대함 속의 부드러움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이 글은 2021년 봄 개인전시때 원주 사시는 강미숙선생께서 전시장을 다녀가시고 페이스북에 쓰신 글이다. 소중한 글을 다시 여기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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