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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봄날에 대한 감상/ 심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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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17-03-18 11:10 조회9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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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백중기 화백

여인숙 앞마당은 저물녘인데도 환하다. 활기찬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편을 가른 아이들이 여인숙 앞마당을 맴돌며 놀이에 열중이다. 달리던 한 아이가 발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또다시 웃음소리가 터진다. 제풀에 놀라 화들짝 꽃잎을 쏟아 붓는 꽃나무 아래 소녀는 서 있다. 칭얼대는 막내 동생을 업고 또 한 동생의 손을 쥐고. 아이들 웃음소리와는 다른 봄날 저녁의 추위가 소녀의 앙다문 입술을 더욱 파리하게 만든다. 바로 어둠이 깔릴 텐데 엄마는 언제 돌아올까. 
야반도주하던 날 밤이 생각난다. 술래잡기하듯 눈 감고서도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고샅이 그날따라 왜 그리 멀고도 위험하게 느껴졌는지. 그믐도 아니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동생을 업고 몸무게보다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허둥거리며 엄마 뒤를 쫒다가 허방에라도 빠진 것처럼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을 때의 느낌. 달빛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밤길이 무섭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알았다. 소녀는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이제 두 번 다시 술래잡기 같은 시시한 놀이는 하지 못하리라.
소금에 전 자반이라도 굽는가. 고소하고 비린 냄새와 함께 젓가락 장단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배고파. 엄마 언제 와?”
“곧 오실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자.”
칭얼대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인숙 안을 바라본다. 저녁 어스름 평상에 사내 서넛이 모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가족을 야반도주하게 만든 장본인.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불렀던 노래다. 고개를 돌리는 눈앞에 커다란 벚꽃 송이가 몸을 뒤집으며 비어져 나오려는 눈물을 닦아준다.

 

백중기 화가의 그림 전시회. 다시 찾은 <봄날>을 오래 바라본다. 착시 현상이었나? 내가 잘못 본 건가. 오프닝 때 본 <봄날>의 ‘벌집 여인숙’ 앞에는 분명 어린 소녀 둘이 서 있었다. 맏이인 언니는 동생까지 업고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여인숙 앞에서. 속내가 있을 거라는 짐작이 왔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오프닝 음악회는 활기차고 즐거웠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뒤풀이에 참석했고 늦은 시간 귀가를 하는데 갑자기 두 소녀가 생각났다. 아직도 별집 여인숙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겠지. 작심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노라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무엇 때문에 하필 여인숙 출입구 앞인지. 여인숙 주인이나 손칼국수집 주인의 아이들이라면 그런 자세로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까.

다음날 오후. <봄날> 앞에 서 깜짝 놀랐다. 대체 이 아이들이 어디 간 거지? 그곳엔 내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소녀들 대신 노랗고 빨간 꽃을 피운 화분 두 송이가 나란히 놓여있을 뿐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곡절도 이런 곡절이 있나. 난분분 벚꽃 지는 여인숙 앞마당에 소녀들 대신 꽃비를 맞으며 꽃을 피우는 화분 두 개라니 말이다.

감이 잡힌다. 이건 분명 화가의 농간이다. 오프닝 타임 때, 봄날 앞에서 떠나지 못하던 나를 본 화가가 심통이 나서 야밤에 붓을 들고 소녀 둘을 화분 두 개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하여튼 신출귀몰한 재주까지 겸비한 모양이다. 그 바람에 입술까지 부르트는 사고를 당해서 예정되어 있던 전시장 나들이까지 취소한다지만. 고거 참 쌤통이다. 하지만 축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림을 잘 모르고(그리 많이 보지도 않았고) 기법도 까막눈인 얼치기에게도, 보는 순간 마음이 따듯해지는 그림은 흔치 않다는 것을 아니까. 백중기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이미지: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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