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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개인전/희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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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1-04-06 06:09 조회1,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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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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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갤러리

 

2021. 4. 14(수) ▶ 2021. 4. 27(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11-3 | T.02-737-8869

 

www.heesugall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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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들녘 100x50cm Acrylic on canvas 2021

 

 

그의 바다에는 별이 떨어진다.
- 화가 백중기의 그림을 보다 -


가만히 그의 그림을 바라본다. 붉은 바다, 푸른 달, 요동치는 하늘, 흰 들판, 굵고 가늘고 진하고 흐린 별들이 물속에 있는 것인지 물에 비친 것인지 영락없이 반짝거리고 사각의 틀 안에 갇힐 이유가 없다는 듯이 근처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 웅얼거린다. 얕은 언덕에 놓인 오래된 집, 마당에는 노란 햇살이 복실 거리고 그 뒤로 서있는 살구나무, 배롱나무는 또 어찌나 그렇게 붉고 하얀 꽃들을 뭉게뭉게 피워 내는지 그 구름을 타고 오르거나 담벼락 옆 봉당에 앉아 살포시 낮의 잠을 자고나 싶은 것이다.

그림이 사람들에게 주는 효용은 무엇일까. 화가에게는 업이고 습이고 또한 그게 아니면 죽을 것 같은 명命이라 한다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림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따지고 보자면 눈에 보이는 세상 모두가 그림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전시장을 찾고 사각의 틀 안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감탄과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바로 ‘특정’이 아닐까. 일상에서 건져 올린 소재와 장면은 작가의 개입으로 순식간에 ‘특별’해 진다. 특정한 장면을 특정한 느낌과 톤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남기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이 ‘특정’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등등의 감상 가부좌에 든다.
이런 면에서 그가 그린 바다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지, 휘황한 붉은 바다 위로 몇 백만 년은 불었을 바람은 아직도 식지 않은 잔열로 후끈하다. 그의 그림은 평면에 존재해 있지만,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출렁이고 때로 가지에 매달려 있던 감이나 마당 빨랫줄에 널려 있던 옷가지가 떨어지기도 한다. 기차가 뿜어 올리는 증기의 세찬 김을 따라 어릴 적 동구 길목으로 달음질치기도 한다. 또한 그가 그린 나무는 여름이면 풍성한 나뭇잎들이 푸른 그림자를 만들고 겨울이면 생각의 혈관 같은 나뭇줄기가 신령스레 넘실거린다.

대교약졸, 초록은 동색이라는 따위, 그의 겨울, 그 회색 안에는 또 수많은 색들이 숨겨져 있다. 굵은 등고선 안에 새겨진 미세한 주름들. 이처럼 그림 속에 노닐다 보면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고갱의 원시적 힘, 세쟌의 농밀한 감성이 뒤섞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식 같지만 고루하지 않은 느낌은 자꾸 보는 이들의 가슴을 건드린다. 그가 나고 자란 백두대간 줄기의 원시적 자연이 그림의 원천이자 자산이 되어 그의 산맥은 겹겹의 물감으로 두텁게 표현돼 있고 산 여울은 여릿한 이유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작은 풍경으로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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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햇살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20

 

 

‘노예에게 철학은 없다!’라고 단언하는 그는 가끔은 술기운으로 흐린 날씨일 때도 있지만, 그는 본래 맑고 예민하고 높은 하늘을 모시고 산다. 그의 가슴은 아직도 뜨겁고,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붓을 잡는다. 붓을 칼처럼 휘두른다. 그러나 뚝뚝 피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푸른 산이 성성하고, 둥근 달이 덩실하고, 꽃과 숲이 수천만 화소로 발광한다. 뚝뚝하고 무질서하되 고분거리지 않는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면 마라톤 풀코스를 뛴 듯 기쁨의 탈진으로 작업실에 쓰러진다. 그리곤 새로운 캔버스를 맞아 또 다른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렇게 몇 날 몇 달을 서로의 체취를 나눠 마시며 하나가 된다. 하여 “작품은 바로 그 사람!”이라는 명제에 이르른다.

이 점에서 그는 언제나 검객이다. ‘캔버스 위의 낭만검객’. 낭만이 젊은 날의 치기쯤으로 평가절하 되는 세상이지만 얍삽한 속계산이 없어야 가능한 경지이다. 검객 또한 칼이 자신과 합일되는 수행에 이르러야 부여되는 호칭이다. 25년이 되어가는 화업畫業, 그중 절반쯤부터 유화대신 아크릴로 그림을 그렸다. 기름보다 물의 특성이 맞아서 부드러운 것과 아주 끈끈한 것과 그 중간 것 등등의 다양한 보조제를 사용하고 있다. 붓이 갖고 있는 인위적인 질감 표현이 싫어 대나무 칼을 애용한다. 이 칼로 미장들이 시멘트를 바르듯 마띠에르 질감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술은 언제나 화학과 노동이 접맥된 곳에 있었던 셈이다. 요사이는 대형 실경산수에 잔뜩 매료되어 있다. 근교의 치악산도 그렸고, 항차 백두대간, 개마고원을 그려 나갈 생각이다.

다시 그의 그림을 들여다본다. 미정이 슈퍼에서 담배를 사서 장미 다방에 들어 얕은 풀들을 보며 깊게 한 모금 빨고 싶다. 그는 종종 보다 더 자주 현실의 정치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예술이 적극적으로 현실을 반영하고 변혁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어디 먹을 것이 없거나 지식이 모자라 이렇게 싸우는 것일까. 여기에 그의 화론이기도 한 ‘그저 공경하고 스미라.’는 말은 새삼 의미가 새롭다. 당장 햇살이 그렇고 바람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자연 속에 사는 유한존재로서의 단독자이지 않은가. 백중기의 그림은 바로 이런 엄연한 현실, 그렇지만 시시해지는 일상을 새롭게 조이고 비트는 작업이다. 하여 그의 작품은 샾#이 붙은 음정과 같다. 일상에 리듬을 주며 새롭게 조율하는 삶, 이것이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특정’이 아닐까. 정신없이 싸우다가 죽기엔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인생! 아마도 이것이 넌지시 낭만검객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가 아닐까.

 

최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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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100x80.3cm Acrylic on canvas 2020

 

 

 

 

  

 출처/http://artmail.com 
 자료제공/희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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